낭만주의 시대의 대학론
이화여대 문과 100주년 인문학콘서트
박찬길 교수 (영어영문학과)
훔볼트와 워즈워스 등 낭만주의 사상가들의 관점을 통해 현대 대학의 방향성과 인문학의 가치를 재조명합니다.
대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화여대의 교육목표?
2007년 이화여대 하계 전체교수회의
"이화여대의 교육목표는 '엔트리연봉 20만불의 글로벌 영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정구현(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신인문주의와 낭만주의: 빌둥(Bildung)

자기실현(self-realization)
완전한 인간(a whole man)으로서의 개인(an individual)
개인적 성장(personal growth)
내면의 성숙
배움(learning)
지식의 습득
독일의 신인문주의와 낭만주의는 국가의 실용적 요구에 반발하여 '빌둥(Bildung)'이라는 교육 이상을 발전시켰습니다. 빌둥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개인의 전인적 성장과 자기실현을 강조합니다.
빌둥은 사회에 유용한 인적자원 보다는, 도덕적으로 완성된 개인을 목표로 합니다.
훔볼트의 베를린대학 모델
대학의 절대적 자율성
정부의 전적인 지원과 불간섭의 원칙을 통해 학문의 독립성을 보장했습니다.
학문과 교육의 자유
연구와 교육의 자유를 통해 진정한 지식 탐구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고독과 자유"
"Einsamkeit und Freiheit"라는 원칙은 학자들이 외부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강조했습니다.
동일체 원칙
지식, 교수와 학생, 연구와 교육의 통합을 통해 학문적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빌헬름 폰 훔볼트가 1810년에 설립한 베를린대학은 근대 연구중심 대학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삼았으며, 오늘날까지 전 세계 대학의 이상적 모델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영국의 대학개혁과 이념적 갈등
1
종교적 차별 철폐
비국교도에 대한 종교적 차별을 철폐하는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2
UCL 설립(1826)
제레미 벤담의 주도로 실용적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University College London이 설립되었습니다.
3
KCL 설립(1828)
워즈워스와 콜리지의 영향으로 전통적 가치를 유지하는 King's College London이 설립되었습니다.
4
보수주의 반발
대학교육의 세속화에 대한 비판으로 Cambridge Apostles, Oxford Movement 등이 등장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대학개혁은 실용주의와 전통주의 사이의 이념적 갈등을 보여줍니다. 벤담이 주도한 UCL은 실용적 지식을 강조했고, 콜리지와 워즈워스의 영향을 받은 KCL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을 중시했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 벤담과 콜리지
제레미 벤담의 실용주의
벤담은 대학이 실용적 지식을 갖춘 유용한 인적자원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공리주의 철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며, 교육도 사회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엔트리연봉 20만불의 글로벌 영재 양성"과 같은 실용주의적 대학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콜리지의 보수주의
콜리지는 "교회와 국가의 구성에 관하여"(1829)에서 "Clerisy"라는 개념을 통해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킬 엘리트 자원의 양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대학이 단순한 직업 훈련소가 아니라 국가의 문화적, 도덕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UCL: 벤담의 영향
1826년 설립된 University College London은 벤담의 실용주의 철학을 반영해 종교적 차별 없이 실용적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KCL: 콜리지의 영향
1828년 설립된 King's College London은 콜리지의 보수주의 사상을 반영해 전통적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워즈워스의 시적 교육
이성을 무기로 중세적 체제에 대항했던 계몽주의의 진보성을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이성에 대한 맹종이 가져오는 인간성의 황폐함에 반발했습니다.
워즈워스가 “시적 정신의 성장”(The growth of poetic mind)을 통해 제시한 “시인”은 “가장 고양된 느낌 속의 이성(Reason in her most exalted mood)”이 장착된 가장 이상적인 인간에 대한 은유(metaphor)였습니다.
"틴턴사원"(Tintern Abbey)
이 아름다운 형상들 . . .
나는 그것들 덕택에
지루한 시간에도 달콤한 감흥을 느꼈다.
핏속에서 느꼈고, 핏줄을 따라 심장에서도 느꼈다.
그리고 나의 더 순수한 마음까지 흘러들어와
고요한 회복을 가져왔다. 아울러
기억되지 않는 쾌락에 대한 감정도 가져왔다.
그건 어느 착한 사람의 인생 최고의 한 대목,
그의 작고, 이름 없는, 기억되지 않는,
친절하고 사랑스런 행동들에
아마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그런 감정이었다.
(25, 27-36행)
"무너진 오두막" (The Ruined Cottage)
우리가 아무리 죽은 사람의 이야기라 해도,
이성과 무관하게 미래의 모든 선과 완전히 단절된 채
순간적인 즐거움에만 만족하며
고인의 고통을 아무 생각 없이 가지고 노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은 방종이며 엄하게 질책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늘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애도하는 마음속 생각에는
미덕에 친근한 힘이 종종 깃들어 있다는 것을.
(222-29행)
시인의 임무
인간의 정신은 조야하고 난폭한 자극이 없어도 일깨워질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이 많을수록 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된다. 이를 모른다면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제 생각으로는, 시대를 넘어 이러한 능력을 창조하고 확장하는 것이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공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정담시집 서문")
"즐거움의 초과상태"(an overbalance of enjoyment)
시인의 임무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의 정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이에게는 쉬운 일이다. 이는 인간이 원래 지닌 존엄성에 대해서, 즉 장엄하고 기본적인 즐거움의 원리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모든 공감은 즐거움으로 전파되며, 우리 내부에는 즐거움으로 구성된 지식만이 존재한다. 시인은 주변의 사람과 사물들을 관찰하며 고통과 쾌락이 얽힌 복합체를 만든다. 시인은 어디서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발견하고, 이 공감에는 즐거움의 초과상태(an overbalance of enjoyment)가 따른다.
("서정담시집 서문")
밀이 워즈워스에게 배운 것
다른 존재들의 즐거움 속에서 우리를 증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아울러 인간성의 나쁜 부분이 주는 고통보다 좋은 부분이 주는 쾌락이 더 많게 함으로써 동료 인간들에 대한 모든 혐오와 경멸의 감정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밀의 자서전)
밀의 취임연설
시적 육성은 어떤 국면에서 이타적인 본성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 개인의 기쁨과 슬픔을 공동체의 이익과 손해와 일치시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단테나 워즈워스의 강의를 듣고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배운 사람은, 자기 삶에서도 그것을 실현하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워즈워스와 나의 빌둥
아름다움을 보는 눈과 착한 마음